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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정전, 태양광 발전의 취약성인가? 전력망 투자 부족의 경고인가?

by All About World 2025. 5. 10.

화창한 일조량을 자랑하는 스페인에서 2025년 4월 28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과 5초 만에 국가 전력 생산량의 60%가 사라지며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암흑으로 몰아넣은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열차와 지하철이 멈추고, 병원 수술이 취소되었으며,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의 공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의 원인으로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발전의 높은 비중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태양광 발전 자체가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었을까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한국에게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족. 정전으로 인해 촛불 아래에서 간식


스페인 재생에너지의 현주소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선진국으로 불립니다. 2011년 31%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 비중이 2024년에는 56.8%까지 증가했습니다. 특히 풍력 발전이 23.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태양광은 17%로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20%로 두 번째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녹색 전환'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던 스페인은 지난 4월 16일에는 재생에너지만으로도 24시간 국가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스페인은 2027년부터 2035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전망은 대정전 사태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엑스트레마두라주의 광활한 태양광 발전소


대정전 발생 과정: 5초 만에 무너진 전력망

정전이 발생한 4월 28일 낮 12시 33분, 스페인 전력 생산량의 약 60%가 태양광 발전으로, 10%는 풍력으로 충당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의 발전소(추정)에서 심각한 발전량 손실이 발생했고, 1.5초 후 또 다른 발전 손실이 이어졌습니다.

약 3.5초 후, 프랑스 측이 스페인과의 전력 연결선을 차단했고, 이것이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심각한 주파수 불균형으로 인해 스페인 발전소들이 설비 보호를 위해 줄줄이 전력망에서 분리되었고, 순식간에 15GW의 전력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스페인 전국은 물론 전력망이 연결된 포르투갈까지 블랙아웃이 발생했습니다. 스페인 전력회사 레드일렉트리카는 이를 '국가적 제로(cero nacional)'라고 표현했습니다.


핵심 원인: 태양광 발전? 아니면 전력망 투자 부족?

재생에너지의 한계: '관성 없음'의 위험성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관성 없음' 특성입니다.

석탄, 원자력, 수력과 같은 재래식 발전소는 터빈의 회전력으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문제가 발생해 발전이 일시 중단되더라도, 터빈의 관성으로 인해 바로 멈추지 않고 한동안 회전을 계속합니다. 이 관성 덕분에 전압과 주파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시스템 안정화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인버터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회전하는 물체가 없어 관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출력이 순식간에 0으로 떨어지며, 전압과 주파수를 유지할 수 있는 뒷심이 없습니다.

"전력 계통이 받쳐주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은 힘들다. 전력 계통에 대한 투자와 업데이트가 꼭 필요하다." - 송승호 광운대 전기공학과 교수

전력망 투자 부족: 재생에너지 확대에 미치지 못한 인프라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스페인의 태양광 발전 용량은 5배 이상 증가했지만 전력망 대부분은 수십 년 전에 건설 및 설치된 것"**입니다. 스페인은 재생에너지에 1달러를 지출할 때마다 평균 30%만을 전력망에 투자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70%를 투자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수석 분석가는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전력망에 공급하려면 전력망을 적절하게 설계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면서 주파수 교란을 흡수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시스템 고장이나 송전선의 약화 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페인 대정전


한국 전력망에 주는 교훈: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0% 안팎으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합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스페인의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기에너지의 섬'**으로, 다른 국가와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전력 위기 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전력망 안정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성을 위한 대책

  1. 인버터 기능 개선: 우리나라는 2022년부터 태양광 발전 인버터에 LVRT(Low Voltage Ride Through) 기능을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문제가 생겨도 인버터가 바로 연결을 끊어버리지 않고, 좀 더 버티면서 운전을 이어가게 하는 기술입니다.
  2. 관성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도입: 에너지저장장치(ESS), 동기조상기, 가상관성 인버터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의 관성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3. 태양광 인버터의 계통연계 기능 업그레이드: 주파수가 흔들려도 일정 수준까지는 견디며 전력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4. 전력망 모니터링 및 제어 시스템 강화: 전국 규모로 재생에너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재생에너지 vs 재래식 발전 비교

에너지 전환, 안전성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스페인 대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단순히 발전 시설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력망 인프라 투자와 기술적 보완이 병행되어야 안정적인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불안전한 기술이 아니다. 우리 전력 시스템이 매일 재생에너지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 베아트리스 코레도르 CEO

 

송승호 교수는 "물론 '100% 재생에너지로 가도 문제없어'라고 얘기하는 것도 무책임하지만, 그렇다고 '우린 하지 말자'고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접근법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필수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전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에는 비용이 수반됩니다. 결국 소비자 요금이나 국민 세금을 통해 이러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필요합니다.

 

재생에너지의 미래는 밝지만, 그 길은 철저한 준비와 균형 잡힌 접근으로 닦아나가야 합니다. 스페인의 아픈 교훈이 우리에게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를 위한 지혜를 선물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