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선산업을 부활시키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이러한 의지를 강력히 피력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조선에 많은 돈을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업 재건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그 이유는 조선업이 해군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의 해군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선박 건조 능력부터 되살려야 한다는 판단인 것이죠.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쇠락의 길을 걸어온 미국 조선업의 현재 위치와 그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조선업의 영광과 몰락
한때 미국은 세계 최강의 조선국이었습니다. 1941~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리버티선'이라 불리는 수송선을 무려 2,710척이나 생산했습니다. 기록적인 생산량으로, 연합국의 전쟁 물자 수송을 담당하며 큰 활약을 펼쳤죠.
이 시기에 미국은 잠시 세계 조선 생산 1위 국가에 올랐지만, 그게 마지막 영광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시로 돌아오자 미국 조선업은 급속히 쇠퇴했습니다. 원래 미국 조선업은 높은 임금과 비싼 철강 가격으로 인해 경쟁력이 낮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미국 조선소들은 배를 싸게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주범은 바로 '존스법(Jones Act)'이었습니다.
존스법: 미국 조선업을 망친 법률
1920년에 제정된 존스법(정식 명칭: Merchant Marine Act)은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①미국에서 건조돼야 하고 ②미국인이 소유해야 하고 ③선원의 75% 이상이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존스법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당연히 미국 조선업을 보호하고 해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필요한 선박과 선원을 즉각 동원하려면 미국산 상선과 미국인 선원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안보 논리였습니다.
"존스법은 미국 조선업을 2류로 전락시켰습니다. 100년 간의 실패 끝에 이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 케이토연구소 2019년 보고서
그러나 실제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였습니다. 존스법은 미국 조선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왔죠. 미국 내 항로를 이용하려면 어떤 해운업체든 반드시 미국산 선박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조선업체들은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을 개선할 필요 없이 마진 높은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게 되었습니다.
존스법의 역설적 영향
존스법으로 인해 미국산 선박의 가격은 계속 상승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해외 선박보다 20% 정도 비쌌던 미국산 선박은 1930년대엔 30%, 1950년대에는 100%가량 비싸졌습니다. 현재 미국산 선박은 국제가격의 4배에 달합니다.
동시에 미국 조선업의 제조 역량은 후퇴했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은 포기하고 안정적인 국내 시장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죠.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대형 블록 건조' 기술입니다.
이 기술 덕분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버티선 한 척을 짧게는 며칠 만에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이 효율적인 기술은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일본으로 기술이 전수되어 일본 조선업의 급부상을 이끌었습니다. 1956년 일본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 되었습니다.
존스법은 국가 안보라는 원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1990~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군은 중동으로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해 외국 국적 선박 177척을 빌려야 했습니다. 동원된 미국인 선원들의 대부분은 60~70대 은퇴자들이었고, 최고령 선원은 92세였다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조선 역량, 230배 차이
현재 글로벌 조선업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2007년 18%였던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건조량 기준)은 2023년 55.7%로 급증했습니다. 수주량 기준으로는 중국의 점유율이 지난해 70%에 달했습니다.
중국의 총 건조능력은 2300만톤으로, 미국(10만톤)의 무려 230배에 이릅니다. 반면 미국의 선박 생산량은 1950년대보다 85% 감소했고, 현재 전 세계 선박 건조량 중 고작 0.1%만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해군력 격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해군의 함정 수(295척)는 중국(400척)에 이미 뒤처진 상태입니다. 또한 중국 군함의 70%가 2010년 이후 건조된 신형인 반면, 미국 군함의 75%는 15년 이상 된 노후 함정입니다.
국가별 선박 건조량 비교 (2023년 기준)
트럼프의 조선업 재건 행정명령
미국 해군은 2045년까지 군함을 381척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재 미국 조선업 역량으로는 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합니다. 미 해군의 브렛 사이들 차관보는 "함정 납품이 약 1~4년 지연되고 있고, 비용은 물가상승률보다 빠르게 계속 상승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 명령에는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산업을 견제하는 조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동맹국 조선업체의 미국 투자를 촉진하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조선에 많은 돈을 쓸 것"이라며 "예전엔 하루 한 척의 배를 만들곤 했지만, 사실상 지금은 1년에 한 척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는 조선 전담 부서가 신설되었습니다.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 모색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업장을 찾았습니다.
"미국이 해양 강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신규 선박 건조와 유지보수 능력을 모두 높여야 합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해 미국 해양 산업 기반을 활성화하고, 이러한 사례를 퍼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
펠란 장관은 한국과 미국 간 가장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 MRO(유지·보수·정비)를 꼽았습니다.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7함대 유콘함의 MRO를 진행하는 등 이 분야에서 이미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 조선소는 미국 조선소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조만간 추가 논의와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존스법 개정 논의와 미래 전망
미국 조선업의 부활을 위해서는 존스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로버트 피터스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함정, 항공기, 탄약은 유사시 전력 대응에 충분하지 않다"며 한국 조선업과의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헨리 해거드 전 주한미국대사관 정무공사는 "미국이 조선업을 구하고, 미래에 필요한 선박을 공급할 역량을 보존하려면 선박을 미국 밖에서도 만들 수 있도록 존스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의회에는 이미 동맹국 조선소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조선업 협의회,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조선업에 찾아온 기회
미국의 조선업 재건 노력은 한국 조선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정우만 HD현대중공업 상무는 "미 해군은 향후 30년간 364척의 군함을 새로 건조할 계획을 갖고 있으나, 현재 미국 조선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존스법과 번스-톨레프슨법(군함 건조 관련 규제)의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조선업체들은 미국 해군 함정 건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MRO 사업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경우 연간 수십조원의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 조선업의 미래와 한국의 역할
미국 조선업이 전성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에 미국이 중국과 한국 수준의 조선 강국으로 복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합니다. 100년간 지속된 보호주의 정책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 조선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구조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가 안보 차원에서 미국은 최소한의 조선 역량 확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선진 조선 기술과 미국의 자본 및 시장이 결합한다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조선업의 쇠락은 보호주의 정책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례입니다. 단기적인 보호보다 글로벌 경쟁을 통한 혁신과 효율성 향상이 산업 발전의 핵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바다의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이 새로운 게임에서 한국 조선업이 미국의 든든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협력이 글로벌 조선 산업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00년된 법률 하나가 세계 최강대국의 해군력까지 위협하는 현실에서, 이제 미국은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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